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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by 물개선생 2008. 2. 14.
출근길에 왠 아주머니가 길을 물어 오셨다. XX 은행지하 장터목 이라고 적힌 쪽지 하나를 달랑 들고서.. 모르는 곳이라 그냥 지나가려 했으나, 느낌이 이상해 같이 찾아보자고 나섰다. 아주머니의 말투가 다소 어색한데다, 쪽지를 들고도 가게 이름을 모르셔서 한글을 못 읽는다는 걸 알아챘기 때문이다.

워낙에 길치인데다 XX 은행이 여러 군데 있는 통에 꽤 길을 헤맨 후에야 찾을 수 있었다. 찾는 동안 얘기를 나눠보니 그 분은 지난 달에 한국에 도착한 카자흐스탄 교민이셨다. 돈을 벌어보고자 가족들과 헤어져 홀홀 단신으로 고국에 들어온 것이다. 몇 년간 일해 모은 돈으로 가족과 함께 행복한 여생을 보낼 수 있을 거라는 희망섞인 소박한 꿈을 가진 분이였다.

아주머니는 길을 찾아가는 내내 몸을 떨고 계셨다. 출근 시간이라 다들 바쁘게 움직인 탓에 아주머니가 쉽게 길을 물어보기 힘들어, 꽤 오랜 시간 길을 헤매셨을 거란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가게까지 모셔다 드리고 나오는 길에 아주머니는 연신 고맙다며 인사를 해주셨다. 그 분이 내 나라, 아니 우리 나라에서 느끼신 첫 인상이 조금이나마 좋아지셨기를 바래본다. 덕분에 10분이나 지각하고 말았지만, 나름 뿌듯한 하루의 시작이다.